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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4. 남부의 패왕 5

    끝나지 않는 겨울이 시작되면서 고블린과 브리 오우거들이 인간의 촌락을 약탈하는 것은 더더욱 극심해졌지만 지금까지 그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에 모인 군대는 달랐다.

    쿠르트 판테온의 사신 이빨의 왕을 섬기는 고블린 샤먼과 오우거 주술사들이 군장이 되고 상당한 수준의 무장과 편제를 갖춘 군대가 남하하고 있었다.

    이빨의 왕의 권속들 무수한 마수들이 그들의 첨병이 되어 움직이니 그 모습이 흡사 지옥의 군단과도 같았다.

    이들은 나이산도카르와 치타이의 국경 누구도 방어하지 않는 황무지를 지나 북방 변경백 발타자르 왕자가 막고 있는 서부 관로를 돌파해 마침내 아랑기에 진입했다.

    발타자르 왕자는 서부 관로의 요새 시하타를 굳게 걸어 잠그고 형식적인 수성전을 벌이고 있었다.

    발타자르 왕자가 이들의 진군을 용인한 것이었다.

    놀란 아랑기의 주민들이 피난가면서 도시는 황폐해지고 아랑기의 수도 아랑진에는 그렇지 않아도 몰려든 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었다.

    *********

    귀족 연합회의 가젠 후작은 당황해서 발타자르 왕자 측에 파발을 보내려 했다.

    그러나 파발조차 지날 수 없었다. 아랑진 밖으로 모여든 이빨의 왕의 군대가 오가는 사람들을 족족 학살해 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제정신인가? 대체 발타자르 왕자는 대체 무슨 생각이지? 이래서야 자신도 고립되지 않는가?”

    하지만 그때 귀족 연합회에 발타자르 왕자의 사절이 찾아왔다. 이들은 놀랍게도 텔바린 길드의 엘프들이었다.

    “가젠 후작님. 발타자르 왕자님의 편지를 가져왔습니다.”

    “놀랍군. 그렇지 않아도 엘프 왕비가 국왕을 시해한 판인데 그대들은 저 이빨의 왕의 권속들을 통과할 수 있단 말인가?”

    “저희의 특별한 마법 덕분이라고 하지요.”

    텔바린 길드의 엘프들은 그렇게 얼버무렸지만 이들이 이빨의 왕의 권속들과 한 패거리임은 분명해 보였다.

    가젠 후작은 뻔뻔한 변명을 참아주면서 발타자르 왕자의 편지를 받아보았다.

    역시 예상대로 발타자르 왕자는 변명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병력이 부족해서 고립되어 있으니 아자딘에게 이빨의 왕의 군대를 토벌할 것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패기가 없군. 아랑기 왕국이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가젠 후작은 발타자르 왕자의 편지를 읽어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왕자 중 가장 왕좌에 가까운 발타자르 왕자가 이런 얄팍한 수법으로 아자딘에게 모든 걸 떠넘기려 하는 게 우습기만 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가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자딘의 군대는 지금도 반릉에서 계속 밀려 들어오는 데 그 숫자가 상당하다.

    아랑기 왕국에 들어온 병력이 2만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었는데 2만이면 북제 코헨 라이오네어나 동원할 수 있는 엄청난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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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대부분이 거지꼴인 난민병이긴 하지만.’

    그 난민병들로 아자딘은 남부 해안 지대를 평정하고 있었다.

    “에렘바 자작인가? 그 녀석 소인배인 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실력이 있나 보군. 그런 거물을 데려오다니.”

    “지금 전령일족을 거물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거물 맞지. 이번에 발타자르 왕자가 크게 도박을 걸었어. 만약 아자딘 왕이 이번에 이 이빨의 왕의 군대를 격파한다면 그가 아랑기의 왕좌를 차지해도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을 걸세.”

    “우습게 되었군요. 그는 자신이 왕좌를 차지할 줄 모르고 의회정치를 제안했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잃을 게 없긴 하군. 아자딘 왕이 저것들을 물리칠 때 무혈로 몸 성히 이겨내진 못할 테니 말이네.”

    귀족들은 누가 이기건 간에 최소한 의회의 의석은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아자딘에게 이빨의 왕을 토벌해 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하기로 했다.

    *********

    에렘바 자작은 아자딘 군의 진입을 허가한 이래 정신 나갈 것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자딘 군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반릉에서 계속해서 원군이 도착해서 정신 차려보니 총원 2만명이 넘는 대군이 되었다.

    2만의 대군이라니. 그런 건 휘브리스 대륙에서는 무슨 신화 속의 전쟁에서나 볼법한 군대가 아닌가?

    아랑기와 치타이가 전쟁을 벌일 때 양쪽 도합 4만명을 동원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백여년 전의 일이다.

    하물며 그것은 왕국과 왕국의 결전. 일개 자작이 눈앞에서 볼 숫자의 병력이 아니다.

    물론 그 대부분은 변변찮은 장비도 없는 난민병들이지만 난민병이건 정예병이건 먹는 건 같은 걸 먹는다.

    결국 에렘바 자작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아자딘 군의 보급 수요를 맞출 수가 없었다.

    병량을 대겠다는 호기로운 약속을 했지만 그 약속은 바로 2주 만에 공수표가 되어버렸다.

    ‘뭐 원래부터 이러려고 했다. 왕의 군대를 자작이 홀로 감당하는 건 너무한 일이지.’

    아자딘은 반릉에서 직접 물자를 들여와 병량을 갖추고 대신 에렘바 자작에게는 공사를 맡겼다.

    보급로를 확충하고 순찰을 강화하며 아자딘이 요구하면 영지 내의 도로를 깔고 보수하는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병량을 대겠다는 약속을 어겼으니 이거라도 해야 했다.

    에렘바 자작은 아자딘의 요구에 따라 길을 보수하기 위해 급한 대로 자신의 저택과 원래 있던 성벽을 허물어서 석재와 목재를 마련했다.

    덕분에 에렘바 자작도 야전사령관처럼 텐트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 귀족 연합회에서 서신이 당도했다.

    북방에서 이빨의 왕의 대군이 밀려들고 있으며 이들을 처단해서 왕국의 안녕을 도모해달라는 귀족연합회의 정식 요청이었다.

    *********

    “이거 이리되면 괜히 의회정치를 한다고 했군요.”

    젝트는 가젠 후작의 연락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남부 해안지대를 평정하고 있는 지금 북에서 몰려온 이빨의 왕의 군대를 막아낸다면 아자딘은 아랑기에 있어서 구국의 영웅이 된다.

    왕좌를 공식적으로 요청한다 해도 누구도 뭐라 하지 못할 크나큰 위업인데 정작 그전에 자신이 스스로 왕권을 제한하는 의회정치를 하자고 말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아자딘은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

    “뭐 의회정치도 나쁘지 않지 않나? 다만 이곳의 왕자들과 귀족들에게는 실망스럽군.”

    “무슨 뜻입니까?”

    “의회를 꾸려나가려면 개인의 이득도 물론 중요하지만 대의에 대해서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말이지. 대의에 대해서는 다들 관심이 없군.”

    “….”

    젝트는 그런 아자딘의 반응에 당혹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아자딘이라는 남자는 정말 대의라는 것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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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브리스의 왕족과 귀족들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런 사소한 것에 집착하며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서 기꺼이 손해를 감수한다.

    ‘구난기사단의 가르침이기 때문인가? 그러나 구난기사단에도 이런 놈은 없었는데.’

    아자딘이 하는 짓이 우매하고 멍청하다고 비웃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우매하고 멍청한 놈에게 탈탈 털린 주제에 그를 조롱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는 꼴이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야 물론 맞서 싸워야지. 이 순간에도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을 텐데 약탈자 놈들이 마음 편하게 약탈하고 다니게 놔둘 수는 없지. 하지만 귀족과 아랑기안 가드들에게도 최소한의 성의는 보이라고 해야겠어.”

    “그러시다면….”

    “징집을 선언하겠다.”

    아자딘은 가젠 후작과 아랑진을 차지한 아랑기안 가드들에게 편지를 썼다.

    *********

    어느새 절기상 완연한 봄의 한복판에 들어섰다.

    이제 겨울철 보리가 아니라 본농사를 위한 여러 작물을 파종해야 할 때지만 여전히 날이 차다.

    불행 중 다행인지 반릉 왕국에서는 북방 작물들의 파종에 성공했으며 아자딘이 점령한 아랑기 왕국의 영토에서도 북방 밀과 순무를 파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이빨의 왕의 군대는 아랑기 왕국의 수도 아랑진의 앞 평야까지 진출한 상태였다.

    저들은 인간을 병량으로 삼아 인육을 먹으면서 진군해 왔다.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또 먹이로서 사로잡힌 채 울부짖고 있었으니 그들의 원통한 비명이 바람을 타고 이쪽 진영에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이런 와중에 아자딘은 허름한 병력으로 아랑진 북쪽 성하마을에 진을 쳤다.

    “젠장. 사기당한 기분이군요.”

    가젠 후작은 아자딘 왕의 징집령에 응해 귀족들의 연합체에서 사병들 종사들을 끌고 왔다.

    전부 합쳐서 1000여명의 기사와 종사들 그들의 말과 갑주 가격을 생각해 보면 엄청난 군사비용이 지불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외국의 왕인 아자딘이 아랑기 왕국을 지키기 위해서 몸소 나서고 있는데 귀족들인 자신들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쪽이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서 최고의 기병대를 꾸려온 데 반해 아자딘 군은 2만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이 난민병 갑주도 제대로 챙겨입지 못한 거지꼴이다.

    아자딘의 군사들은 장비가 부실해도 뛰어난 훈련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아무리 훈련도가 높다고 해도 근본적인 병종의 차이를 뒤집을 수는 없다.

    이빨의 왕의 군대는 강력한 돌파력을 지닌 괴수들로 이뤄진 괴수기병단 그리고 역시 무시무시한 괴력을 휘두르는 오우거 워밴드의 충격력으로 인간 군대의 방어선을 부숴버리고 그 후 돌입하는 고블린 병사들의 파괴적인 공격력으로 병력의 숨통을 끊는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괴수기병과 오우거 워밴드를 막을 수 있는 공격력 혹은 방어력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기사들만이 가능하지요. 이거 참… 우리가 선두에서 피를 봐야겠습니다.”

    “아니 우리만은 아니지.”

    가젠 후작은 고개를 저었다.

    아랑진을 차지하고 있던 아랑기안 가드들이 아자딘 왕의 편지에 성에서 나와 아자딘 군대에 합류했다.

    약 300기의 중장보병들이 거대한 할버드와 양손 대검을 들고 무슨 신전의 거상처럼 위엄에 가득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들 또한 아자딘 군의 실체를 보고 불만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남부 해안 지대를 평정하고 있는 2만의 군대라고 해서 엄청나게 대단한 대군일 줄 알았는데 거지들을 긁어모아서 머릿수만 불린 모습이라니.

    속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리라.

    하지만 아자딘에게 돕겠다고 말한 이상 이제 와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아랑기안들은 다들 명예와 체면을 중요시한다. 아랑기 왕 카르나고 4세가 좀 특출난 경우였지 대부분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주워 담기 위해서 목숨마저 걸곤 했었다.

    아랑기 인들은 명예와 허세 빼면 시체다.

    근본은 쪼잔한데 명예에 집착하는 소인배라는 게 다른 지역 사람들의 평판이긴 하지만… 명예에 집착하는 것만으로도 일단 사람 구실은 하는 셈이다.

    아예 명예를 도외시하면 그것도 곤란했으리라.

    “어디 전령일족 왕의 지휘 실력을 봅시다.”

    아랑기안 가드들도 아자딘이 과연 얼마만큼의 군재를 보일지 의문을 품었다.

    그때 아자딘이 히포그리프를 타고 하늘에서 날아와 그들의 앞에 착지했다.

    “자 그럼 포진을 결정하겠다! 미안하지만 아랑기안 가드들 그대들은 가장 위험하고 가장 힘든 임무를 맡아주어야겠다.”

    아자딘은 아랑기안 가드들에게 선두에 설 것을 요청했다.

    아랑기안 가드들이 그런 뻔뻔한 요구에 코웃음 쳤다.

    “아니 아자딘 왕. 당신은 타국의 왕이자 전령일족이요. 그런 당신이 아랑기의 왕이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솔직히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소.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적들의 돌격을 가장 먼저 몸으로 받아내란 말이오?”

    “그래. 왜냐면 지금 저 이빨의 왕의 군세를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은 오로지 그대들 아랑기안 가드뿐이기 때문이지. 왜? 불만인가?”

    “흥… 불만일 리가.”

    “아랑기안 가드의 실력을 보여주겠소!”

    아랑기안 가드들은 아자딘의 명령을 기꺼이 받들어 자신들이 제일 선두에 섰다.

    그들의 앞에는 그들보다 두배는 큰 오우거들과 그 오우거들보다도 더 큰 뿔과 이빨 달린 괴수기병들이 달려오고 있었는데도 아랑기안 가드들은 전혀 겁먹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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